서산書算, 산문算文이라고도 한다. 책 읽은 횟수를 기억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. 아래쪽 열 개의 홈은 한 번 읽을 때마다 하나씩 젖히고, 열 개가 다 젖혀지면 위쪽의 하나를 젖혀 열번을 표시했다. 폭 4.5cm 높이 23.5m, 한양대박물관 소장
-정민,『미쳐야 미친다』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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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2010.08.02 영통골입구도[강세황]
- 2010.07.30 19세기 천재화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
- 2010.07.29 국립중앙박물관 계단에 그려진 파르테논신전
- 2010.07.29 월광사[月光寺] 원랑선사[圓朗禪師] 탑비[塔碑]
그런데 아무리 기세가 대단했던 기생도 나이가 많아지면 이렇게 처량 맞게 되기 마련입니다. 기생이 늙으면 흔히 세 가지가
없어진다고 합니다. 우선 미모가 스러지고, 그 다음엔 재물이 바닥나고, 마지막엔 명성까지 흐려진다고들 말하지요. 그래서 찾아오는
사람이 없어 아주 무료해 가지고, 곰방대도 피워 물었다가 생황도 불었다가 하면서 소일합니다. 저 여인의 두 발 놓임새가 이렇게
헤벌어진 걸 보면, 아마도 전성기가 지난 것 같은데 얼마나 쓸쓸하고 처량 맞습니까? 옛 시절이 화려했으면 화려했던 만큼 쓸쓸함도
배가 되었겠죠?
-오주석, "한국의 美 특강"중에서
19세기 조선의 화가 강세황이 그린 "영통골입구도". 바위에 명암을 표현한 데서 서양화풍의 영향이 나타난다.
장승업 - 꽃, 새, 동물을 그린 8폭짜리 병풍 그림 부분촬영 / 2010년6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
2010년7월28일/국립중앙박물관/아이폰 촬영
이 탑비는 신라말 원랑선사(816∼883)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다. 원랑선사가 입적하자 헌강왕은 대보선광大寶仙光이라는 탑 이름을
내리고, 김영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는데 글씨는 당나라 구양순의 해서체이다.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올려놓고 그 위에 교룡蛟龍을 새긴
머릿돌을 얹는 구성으로, 이러한 탑비의 모습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.